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 리뷰(우정, 아스트로파지, 결말)

책으로 먼저 읽고 극장에 갔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우주선과 로키의 모습이 스크린에서 전혀 다른 질감으로 펼쳐졌는데, 그게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단순한 SF 생존 영화가 아닙니다. 종족도 언어도 생김새도 완전히 다른 두 존재가 우주에서 만나 서로를 구하는 이야기입니다.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스포O)

헤일메리


아스트로파지, 인류를 위협한 별의 포식자

책을 읽을 때는 아스트로파지(Astrophage)라는 단어가 좀 낯설었습니다. 아스트로파지란 별을 뜻하는 '아스트로(astro)'와 제거·삭제를 뜻하는 '파지(phage)'가 결합된 이름으로, 말 그대로 별을 죽이는 미생물입니다. 태양에서 에너지를 흡수하고 금성으로 날아가 번식하는 순환을 반복하면서, 태양이 지구에 보내는 열을 조금씩 빼앗아 빙하기를 앞당기는 존재입니다.

이 설정이 섬뜩한 이유는 아스트로파지에게 악의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그냥 먹고 번식할 뿐입니다. 지구의 운명 따위는 관심 밖입니다. 영화 속 페트로바선(Petrovian Line) 장면, 즉 아스트로파지가 행성 사이를 오가며 만들어내는 긴 빛의 띠를 처음 봤을 때 진짜로 숨이 막혔습니다. 카메라의 적외선 필터를 제거하고 철망에 조명을 쏴 실제로 촬영한 장면이라고 하는데, CG였다면 절대 그 느낌이 안 났을 것 같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단 1mg의 아스트로파지가 TNT 폭탄 21톤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낸다는 계산입니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나오는 질량-에너지 등가 법칙(E=mc²)으로 설명됩니다. 질량-에너지 등가 법칙이란 물체의 질량에 광속의 제곱을 곱한 값이 그 물체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 총량과 같다는 원리입니다. 광속의 제곱은 약 9경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라 질량 1kg만 에너지로 완전 전환해도 원자폭탄 1,000개 수준이 됩니다. 아스트로파지는 반물질 없이도 이 변환을 100% 해낸다는 설정이니, 그것만으로도 이 생명체가 얼마나 비범한 존재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구에서 헤일메리호를 12광년 거리의 타우 세티까지 보내기 위해 필요했던 아스트로파지는 2,000톤입니다. 사하라 사막 4분의 1을 덮는 배양 시설을 5년 동안 풀가동해야 겨우 만들 수 있는 양이었죠. 왕복 여행이 꿈도 못 꿀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정,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전해진다

저도 처음엔 외계인과의 교감 장면이 좀 작위적이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언어가 다른데 어떻게 소통하느냐는 현실적인 의문이 들기도 했고요. 그런데 막상 보니 오히려 그 과정이 가장 설득력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레이스와 로키는 처음에 서로를 경계합니다. 우주에서 외계 생명체를 만나면 무섭고 낯설어서 공격적으로 반응할 것 같다는 게 일반적인 상상인데, 영화는 그 경계심이 수학과 음악을 통해 조금씩 무너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제가 경험한 어떤 인간 관계의 서사보다 솔직히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로키는 에리드(Erid)라는 행성 출신의 생명체로, 그 행성의 환경이 지구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1. 대기압이 지구의 29배에 달하는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이 단단한 암석 질감으로 진화했습니다.
  2. 평균 기온이 200도를 넘기 때문에 산소 대신 암모니아로 호흡하며, 체온 자체가 210도에 달합니다.
  3. 빛이 없는 행성에서 진화해 눈이 없고, 박쥐나 돌고래처럼 초음파(echolocation)로 주변을 인식합니다.
  4. 입과 항문이 하나의 기관이라 식사 자체가 타 종족에게는 굉장히 낯선 모습입니다.

이런 설정 덕분에 로키가 그레이스를 구하기 위해 산소가 있는 공간으로 나왔을 때 몸이 타들어가는 장면이 더욱 먹먹했습니다. 210도짜리 몸이 산소와 접촉하면 타는 게 당연한데, 그걸 알면서도 뛰어나온 것이니까요. 영화 속 둘의 관계는 솔직히 같은 인간 사이에서도 찾기 힘든 종류의 신뢰였습니다.

로키의 나이가 290살이고, 타우 세티에 46년간 혼자 고립되어 있다가 헤일메리호를 발견했다는 설정을 알고 나니 처음에 로키가 우주선을 계속 따라다니던 장면이 완전히 다르게 읽혔습니다. 반가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따라다닌 것이었죠. 그 장면에서 웃었다가 나중에 울었습니다.

결말의 선택, 영웅인가 포기인가

영화를 보고 나서 그레이스가 지구로 돌아가지 않은 선택을 두고 "아름다운 결말"이라고 보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조금 다르게 읽혔습니다. 로키를 구하러 돌아갔을 때부터 이미 현실적으로 귀환이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게 순수한 희생인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 경계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원작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이렇습니다. 지구를 떠날 때 35세였다고 가정하면, 프로젝트 준비 5년, 비행 후 시간 팽창(time dilation)을 고려해도 타우 세티 도착 시점에 이미 45세 전후입니다. 시간 팽창이란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할수록 이동체 안의 시간이 느려지는 현상으로, 지구에서 12년이 흘러도 우주선 안에서는 4~5년밖에 흐르지 않는 원리입니다. 이후 연구 기간과 로키 행성까지의 이동을 합산하면 50대 초반, 그리고 로키 행성의 중력이 지구의 두 배를 넘다 보니 근육과 관절, 심장 모두에 지속적인 무리가 가해져 몸은 이미 70대 중반 수준으로 노화됩니다.

로키 행성에서 지구까지 16광년입니다. 시간 팽창을 적용해도 6살은 더 먹게 됩니다. 지구에 도착할 즈음이면 80대 노인의 몸이고, 무중력 환경에서 오래 있으면 골밀도(bone density)와 근육량이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에 살아서 도착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골밀도란 뼈에 포함된 미네랄의 밀도를 뜻하는데, 중력이 없는 환경에서는 뼈가 하중을 받지 않아 빠르게 약해집니다. NASA의 인간우주비행 연구 프로그램(출처: NASA)에 따르면 장기간 우주 체류 시 골밀도가 한 달에 약 1~2% 감소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레이스의 선택은 우정을 위한 낭만적 결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차피 돌아가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냉정한 판단이기도 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사실일 수 있다는 점이 원작을 더욱 씁쓸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레이스가 로키 행성에서 자신의 근육 조직을 복제해 만든 고기를 "내 살 버거"라고 부르며 먹는 장면은 원작에만 나오는데, 이걸 읽었을 때 웃으면서도 뭔가 묘하게 뭉클했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낙관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그레이스라는 사람이, 어쩌면 처음부터 기억을 지운 채 보내진 게 그를 살린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했거든요.

스트라트, 악인인가 구원자인가

저는 스트라트가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레이스를 강제로 마취시켜 우주로 쏘아 올리는 장면은 분명히 비인도적입니다. 아무리 인류를 구하는 명분이 있어도 한 사람의 삶을 본인 동의 없이 완전히 빼앗은 것이니까요. 그 장면에서 저는 솔직히 분노가 먼저 왔습니다.

그런데 원작에서 스트라트의 전공이 역사학이었다는 설정을 알고 나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역사학자로서 그녀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태양이 식는 현상 자체가 아니라, 식량이 부족해졌을 때 인간이 서로에게 가하는 잔혹함이었습니다. 그녀가 계산한 30년의 시간도 전 세계가 협력할 때나 가능한 숫자였고, 실제로는 강대국들이 약소국의 마지막 식량을 빼앗기 위한 전쟁이 그보다 훨씬 빨리 시작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인류를 구하겠다는 프로젝트 기간 동안 스트라트가 저지른 일들, 즉 환경 파괴, 국제 조약 무시, 인권 유린, 저작권 침해 등은 임무가 끝난 뒤 자신이 감옥에 갈 것을 본인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면죄부(免罪符)가 있었다는 것은 그 기간 동안만 처벌받지 않는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만료되는 순간 자신에게 적이 된 모든 개인과 기관과 국가가 달려들 것을 그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국제 과학저널 사이언스(출처: Science)에서도 집단 위기 상황에서의 인간 의사결정 윤리에 관한 논의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스트라트처럼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결정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아직도 논쟁 중인 문제입니다.

영화에서 스트라트가 파티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라이언 고슬링의 즉흥 제안으로 추가된 장면이라고 합니다. 원작의 무거운 대사를 그 한 장면이 대신 설명하고 있었는데, 가사와 표정이 너무 찰떡이어서 저는 그 부분에서 하마터면 눈물이 흘렀습니다. 천사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여자가 그 직후 그레이스를 마취시키는 장면의 낙차가 너무 커서, 스트라트라는 캐릭터가 훨씬 더 깊어졌다고 느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책과 영화 중 어느 쪽이 더 낫나요?

A. 책으로 먼저 읽고 영화를 본 저의 경우, 둘 다 다른 방식으로 좋았습니다. 책은 그레이스의 내면과 과학적 디테일을 훨씬 깊이 다루고, 영화는 페트로바선 장면처럼 시각적으로 표현했을 때 훨씬 강렬해지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순서를 권장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순서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Q. 아스트로파지가 실제로 가능한 생명체인가요?

A. 현재 과학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생명체입니다. 다만 앤디 위어가 질량-에너지 등가 법칙 등 실제 물리 법칙을 바탕으로 설계한 설정이라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실제 우주생물학(astrobiology)에서도 극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극한 생물(extremophile)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완전히 불가능한 상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Q. 로키는 왜 승조원들이 다 죽었는데도 혼자 살아남을 수 있었나요?

A. 우연 덕분입니다. 로키는 기술자였기 때문에 평소 연료탱크 근처에 있었는데, 그 탱크 안에 저장된 아스트로파지가 우주의 방사선 물질을 흡수해줬기 때문입니다. 아스트로파지가 방사선까지 에너지로 저장하는 잡식성 미생물이라는 점이 뜻밖의 방패막이 된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로키를 죽음의 위기에 빠뜨린 아스트로파지가 로키를 구한 셈입니다.

Q. 그레이스는 왜 기억을 잃은 채로 깨어났나요?

A. 스트라트가 의료 로봇을 조작해 그레이스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기 직전 기억 억제 약물을 주입하도록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강제 탑승에 대한 반발심이나 절망감으로 임무를 망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언어 능력과 전문 지식은 유지되고 상황 기억만 억제되며, 몇 주 후면 기억이 돌아오는 방식이었습니다.

Q. 타우메바가 아스트로파지를 제거할 수 있다면 왜 다른 별에는 없었나요?

A. 타우메바(Taumeba)는 아스트로파지가 탄생한 고향인 타우 세티 생태계에서만 진화한 포식자이기 때문입니다. 타우메바란 아스트로파지를 먹이로 삼는 미생물로, 생태계에서 피식자와 포식자가 함께 진화하는 원리로 생겨난 존재입니다. 다른 행성에는 아스트로파지가 외래 침입자로 유입된 것이라 대응하는 포식자가 함께 진화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상상으로 채워야 했던 빈칸들이 영화에서 어떻게 시각화될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는데, 막상 보고 나서는 그 선택들이 대부분 옳았다고 느꼈습니다. SF 장르를 즐기는 분들에게는 책과 영화를 모두 보시길 권합니다. 그레이스와 로키의 이야기는 어느 매체로 접하든, 한동안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EOL2uR83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