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이카와: 인어섬의 비밀 영화 리뷰(귀여움의 함정, 먹이사슬, 영생의 저주)

일본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한국에서도 화제입니다. 귀여운 캐릭터들의 모험을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갔다가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오늘은 그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스포O)

치이카와

귀여운 그림 안에 숨겨진 먹이사슬

저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애니메이션으로 마음의 정화가 필요해서 찾아본 영화였는데, 막상 보고 나오니 정화는커녕 뭔가 묵직한 게 하나 얹혀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무섭고 자극적인 장면이 전혀 나오지 않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소름 돋는, 왠지 일본 특유의 심리적 공포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볼 때는 그냥 넘어가는데 집에 돌아와 곱씹을수록 무서워지는 그 느낌 말입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포식(捕食), 즉 잡아먹는 행위가 이야기의 뼈대에 깔려 있다는 점입니다. 포식이란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먹이로 삼는 생태계의 기본 관계를 뜻합니다. 귀여운 치이카와 일행이 먹을 것을 찾아 섬에 갔더니, 그 섬 자체가 거대한 먹이사슬 안에 있었던 셈이죠. 인어 고기를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설정부터, 거대한 인어 세이렌이 주민들을 된장에 절여 먹으려 한다는 전개까지, 귀여운 그림체와 잔혹한 내용 사이의 간격이 오히려 더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작가 나가노는 창작의 뿌리로 비아트릭스 포터의 그림책 새뮤얼 위스커스 이야기를 꼽은 적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아기 고양이 톰은 쥐 부부에게 붙잡혀 버터를 발리고 반죽에 싸이는데, 쥐 부부가 걱정하는 건 "고양이를 먹어도 되는가"가 아니라 "굴뚝 그을음 때문에 맛이 떨어지지 않을까"입니다. 톰에게는 목숨이 걸린 공포가, 쥐에게는 그냥 저녁 준비인 거죠. 치이카와의 세계도 정확히 그 구조입니다. 무서운 일을 겪고 나면 다시 일하러 가고, 맛있는 걸 먹고, 친구와 웃습니다. 관객에게는 충격이지만, 등장인물들에게는 그냥 하루입니다.

이 세계관을 이해하면 섬으로 보낸 전단지의 공포도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보수 100배, 한정 라멘과 디저트라는 달콤한 말로 토벌자들을 불러들이면서, 섬의 비밀은 숨긴 채입니다. 귀엽고 친절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속내가 있는 것, 만화 그림체라서 귀엽게 느껴지지만 인간 배우가 연기했다면 분명 무서운 장면이었을 겁니다. 제가 직접 보고 나서 느낀 건, 이 영화는 귀여움을 방패막이처럼 쓴다는 점이었습니다.

누가 괴물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뒤집히는 가해 구조

이 영화에서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부분이 여기입니다. 서사 구조(narrative structure), 즉 사건이 쌓이고 연결되는 방식 자체가 관객이 쉽게 편을 고르지 못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보통의 이야기라면 나쁜 쪽과 착한 쪽이 나뉘지만, 이 영화는 계속해서 그 경계를 흐립니다.

사건의 발단은 세이렌의 실수였습니다. 세이렌이 미처 모르는 사이 그 거대한 몸이 일으킨 사고로 섬 주민 두잎이 크게 다칩니다. 한잎은 친구를 살리기 위해 세이렌과 함께 살던 인어를 꾀어내고, 화면 밖에서 둔탁한 소리만 몇 번 울립니다. 두잎은 살아납니다. 그런데 한잎이 해친 건 사고를 낸 세이렌이 아니라, 이 모든 일과 아무 관계없는 인어였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피해자가 생깁니다.

이 고리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세이렌의 사고 → 두잎이 다침 (두잎이 피해자, 세이렌이 가해자)
  2. 한잎이 무관한 인어를 희생 → 두잎이 살아남 (인어가 피해자, 한잎이 가해자)
  3. 세이렌이 인어를 잃고 분노 → 무관한 섬 주민들을 납치 (주민들이 피해자, 세이렌이 가해자)
  4. 주민들이 외부 토벌자를 모집 → 치이카와 일행이 사건에 연루됨

누군가 소중한 것을 지키거나 피해에 맞서는 순간마다 다음 피해자가 생겨났습니다. 영화는 각자의 사정을 보여주지만, 그 사정만으로 모든 행동을 납득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한잎의 절박함을 이해한다고 해서 인어가 죽었다는 사실이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요.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두잎이 혼자 영원히 사는 삶을 상상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주변 사람이 모두 늙어 떠나가는 미래를 떠올리자, 두잎은 한잎에게도 인어 고기를 먹입니다. 일본에는 야오비쿠니(八百比丘尼)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인어 고기를 먹고 800년을 살았다는 비구니의 이야기인데(출처: NHK 민화 아카이브), 그 전설 속 영생의 가장 큰 형벌은 혼자 남는 것이었습니다. 두잎은 그 고독만큼은 피하려 했던 거죠. 영원히 사는 삶이 누군가에게는 꿈이겠지만, 직접 그 장면을 보고 나서는 그게 꿈일 수 있다는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쿠키 영상이 완성하는 영생의 저주

이 영화는 쿠키 영상(post-credit scene)을 반드시 봐야 합니다. 쿠키 영상이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추가로 삽입된 장면으로, 본편의 여운을 연장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예고하는 연출 기법입니다. 저는 쿠키 영상을 보지 않고 나왔다면 이 영화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영화 본편 안에는 복선(伏線)이 여러 겹 깔려 있습니다. 복선이란 나중에 일어날 사건을 미리 암시하는 장치를 뜻합니다. 섬으로 가는 배에서 하치와레가 뱃멀미하는 치이카와를 위해 탄산음료를 찾는 장면이 있는데, 그 말에 한잎과 두잎이 흠칫 놀랍니다. 일본어로 탄산과 건전지가 같은 발음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볼 때는 그냥 넘어가는 장면이지만, 비밀을 알고 나면 전혀 다른 장면이 됩니다. 인어 고기를 먹고 불사의 몸이 됐지만, 그 몸을 움직이려면 건전지를 갈아 끼워야 한다는 사실이 나오거든요.

이 설정이 묘한 이유가 있습니다. 불사(不死), 즉 죽지 않는 몸이라는 개념은 전설이나 신화에서 늘 거대하고 신비롭게 묘사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영생은 흔한 건전지 하나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 초라함이 오히려 두 사람의 처지를 더 쓸쓸하게 만듭니다. 불로불사라는 거창한 단어 뒤에 붙은 게 하필 편의점에서 파는 건전지라는 것, 제 경험상 이 디테일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치이카와는 결국 그 비밀을 알게 되고, 한잎과 두잎이 세이렌이 찾던 범인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치이카와는 말하지 않습니다. 보통의 미스터리라면 진실을 알아낸 순간 사건이 풀리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문제가 더 어려워집니다. 세이렌에게 범인을 가리키는 건 단순히 진실을 알리는 일이 아니라, 분노한 세이렌의 화살이 향할 곳을 직접 지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이렌은 범인을 찾으면 좁은 곳에 가두겠다고 말했습니다. 죽지 않는 몸에게 그 감금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형벌입니다.

치이카와의 침묵을 저는 용서로 보지 않았습니다. 판단 자체를 자신이 내리지 않는 쪽을 택한 것이라고 읽었습니다. 인어를 잃은 건 치이카와가 아니라 세이렌이었고, 피해자를 대신해 용서할 자격은 치이카와에게도 없었으니까요. 관객인 우리는 한잎의 절박한 사정까지 알고 있는데도 선뜻 답하기 어렵습니다. 직접 그 장면을 보면서 저도 같은 자리에서 멈췄습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 섬이 잠든 새벽 한잎과 두잎이 작은 배를 타고 도망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섬을 향해 세이렌이 헤엄쳐 오는 모습이 비치고, 영화는 거기서 끝납니다. 주인공의 모험이 끝나는 자리와 다른 이들의 삶이 끝나는 자리는 같지 않습니다. 이 장면이 무서운 이유는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줘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스스로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는 몸, 끝나지 않는 추적, 그리고 붙잡히면 가두겠다는 세이렌의 말이 겹쳐지는 순간, 두 사람의 앞날이 막막해집니다.

한잎과 두잎에게 영생은 분명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기적을 뒤집어 보여줍니다. 도망쳐야 하는 시간도 영원하다는 것, 같은 노래가 누군가에게는 우정의 약속이고 누군가에게는 풀리지 않는 저주가 된다는 것을요.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일본 전래 동요 오늘은 안녕은 언제까지나 변치 않는 친구로 지내자는 내용인데(출처: 일본 전통예술·문화 디지털 라이브러리), 한잎과 두잎에게 그 약속은 말 그대로 이루어져버렸습니다. 언제까지나 함께, 끝나지 않는 도망으로요.

자주 묻는 질문

Q. 치이카와 인어섬의 비밀은 아이들도 볼 수 있는 영화인가요?

A. 직접 보고 나서 느낀 건, 귀엽고 밝은 그림체로 포장되어 있지만 내용은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무서운 연출이나 잔인한 장면은 없지만,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 누군가를 위해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킨다는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함께 간다면 영화 후에 이야기를 나눌 준비를 하고 가시길 권합니다. 나오면서 우는 아이들이 실제로 있었을 만큼, 감정적으로 무거운 장면이 있습니다.

Q. 쿠키 영상은 꼭 봐야 하나요, 내용이 무엇인가요?

A. 반드시 봐야 합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쿠키 영상까지 포함해야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 범인으로 지목될 수 있었던 두 인물이 섬을 탈출하는 장면과 그 뒤를 쫓아 헤엄쳐 오는 세이렌이 등장합니다. 직접적인 결말을 보여주지 않지만, 두 인물의 앞날이 얼마나 불안한지를 훨씬 강하게 전달하는 장면입니다.

Q. 영화 속에 숨겨진 장치나 복선이 있나요?

A.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탄산 복선입니다. 배 위에서 탄산음료를 묻는 말에 두 주민이 흠칫 놀라는 장면인데, 일본어로 탄산과 건전지의 발음이 같기 때문입니다. 또 섬에 처음 도착했을 때 흐르는 노래도 조합하면 섬의 비밀을 암시하는 가사가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어를 잘 모르면 첫 관람에서 놓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알고 나서 돌이켜보면 소름이 돋습니다.

Q. 세이렌이 주민들에게 왜 화를 내는 건가요, 처음에는 좋은 관계 아니었나요?

A. 맞습니다. 원래 세이렌은 섬에 풍요를 가져다주는 존재였습니다. 세이렌이 노래를 부르면 작물이 자라고, 주민들은 그 대가로 세이렌과 인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선순환이 있었죠. 그 관계가 깨진 것은 한 주민이 세이렌과 함께 살던 인어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세이렌은 범인을 찾겠다며 무관한 주민들까지 잡아가기 시작했고, 그게 이 영화 사건 전체의 출발점입니다.

불호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마음의 정화를 기대하고 간 영화인데, 나오고 나서도 한참 머릿속에서 그 섬이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치이카와 본편은 계속 보고 싶어졌습니다. 무서운 세계에서도 맛있는 걸 발견하면 웃고, 친구와 함께라면 또 버텨내는 그 모습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보고 나서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남는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쿠키 영상까지 꼭 자리를 지키시길 권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TsIQX7_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