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악단 : 찬가 영화 리뷰(아이러니, 찬양의 힘, 종교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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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교회를 탄압한다고 알면서도, 지원금을 받으려고 가짜 찬양단을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저는 이 설정을 처음 접했을 때 잠깐 멍했습니다. 탄압하는 쪽이 찬양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 이 모순 하나가 영화 전체를 끌고 갑니다. 관객 평점 8.75점, 누적 관객 145만 명을 넘어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스포O) 모순이 설계된 아이러니, 그 중심의 두 인물 영화의 주인공 박교순 소좌는 이른바 체제 순응자(體制順應者), 즉 북한 시스템 안에서 가장 충성스럽게 기능해온 인물입니다. 평생 기독교인을 색출하고 잡아들이던 보위부 장교가 이제는 찬송가를 직접 지휘해야 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감독은 그의 이름 "교순"조차 "순교"를 뒤집어 지었다고 밝혔는데, 이름 하나에서부터 운명의 역전을 암시하는 구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대편에는 김대위가 있습니다. 그는 단순한 경쟁자가 아닙니다. 원칙과 숙청에서 존재 이유를 찾는 인물로, 사실상 북한 체제 그 자체의 의인화(擬人化)입니다. 의인화란 추상적인 개념이나 제도를 구체적인 인격체로 표현하는 서사 기법입니다. 박교순에게서 나타나는 아주 미세한 흔들림조차 반동(反動)의 징후, 즉 체제에 반하는 위험 신호로 읽어내고 끝까지 몰아붙입니다. 배우 정진훈 씨가 이 역할을 준비하며 실제 보위부 출신 탈북민에게 자문을 받았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는데, 그 자문에서 강조된 건 걸음걸이나 말투가 아니라 모든 걸 의심하고 타인의 약점을 찾아내는 내면의 집요함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디테일이 오히려 이 영화를 단순한 반북 서사로 읽히지 않게 하는 장치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인물의 대결 구도를 이해하려면 북한의 보위부(保衛部) 시스템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보위부란 북한의 국가보위성 산하 정치사찰 기관으로, 주민 감시와 사상 검열을 담당하는 조직입니다. 이 조직 출신이 찬양을 가르치는 장면이 코미디처럼 시작되다가 결국 그의 내면을 무너뜨리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흐름, 그 설계...

엘차포를 체포하라(실화배경, 마약카르텔, 경찰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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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마약왕 엘차포가 어떻게 잡혔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멕시코가 마약과 전쟁을 선언했다는 뉴스는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었지만, 정작 체포 과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냥 넷플릭스에 신작으로 떠서 무작정 틀었는데, 보다 보니 제가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더군요. 실화 기반이라는 점이 오히려 이 영화를 더 무겁고 묵직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스포O) 실화 배경: 세계 최대 마약 카르텔의 정점 엘차포(El Chapo)는 별칭이고, 본명은 호아킨 구스만(Joaquín Guzmán)입니다. 그는 멕시코 시날로아 카르텔(Sinaloa Cartel)의 수장이었습니다. 시날로아 카르텔이란 멕시코를 거점으로 미국과 중남미 전역에 마약을 공급하던 세계 최대 규모의 마약 밀매 조직을 뜻합니다. 추정 재산이 150억 달러, 한화로 약 18조 원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수치만 봐도 이 조직이 단순한 범죄 집단이 아니라 사실상 하나의 국가 권력에 맞먹는 규모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엘차포는 멕시코 대통령조차 사실상 손을 놓을 정도로 이미 경찰과 정치권 곳곳에 자기 사람을 심어두고 있었습니다. 부패 연계망(Corruption Network)이란 개념이 있는데, 이는 범죄 조직이 공권력 내부에 자금을 뿌려 합법적인 수사와 체포를 무력화시키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멕시코의 경우 이 부패 연계망이 경찰 말단에서 상층부까지 촘촘하게 형성되어 있었다는 게 영화가 계속해서 암시하는 맥락입니다. 주유소에서 무장한 채 돌아다니는 조직원들, 경찰차가 지나가자마자 달려드는 동네 갱들. 영화가 묘사하는 멕시코의 분위기는 굉장히 날 것 그대로였습니다. 제가 한때 남미 여행을 꿈꿨던 때가 있었는데, 멕시코 범죄 뉴스 등을 보면서 그 마음이 상당히 쪼그라들었습니다. 물론 멕시코 전체를 이렇게 봐서는 안 되지만, 2016년 체포 당시의 현실적인 치안 상황을 영화가 꽤 충실하게 재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멕시코의 마약 관련 폭력 사건...

겟아웃 영화 리뷰 (반전, 최면,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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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98%를 기록한 공포 영화가 있습니다. 처음 이 수치를 봤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공포 영화가 이 정도 평점을 받는 경우는 드물거든요. 겟아웃(Get Out)은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라,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구조를 장르 문법 안에 정교하게 녹여낸 작품입니다. 제가 직접 보고 나서 '아, 이래서 평점이 저렇구나' 싶었습니다.(스포O) 제목부터 미끄러운 영화, 겟아웃의 반전 겟아웃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저는 단순히 어딘가에서 탈출하는 내용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 제목이 얼마나 다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 단순히 그 집에서 도망치라는 말이 아니라, 몸속에 갇힌 원래 주인이 침입자에게 내뱉는 절규이기도 하거든요. 영화의 핵심 설정은 코아글라 응고법(Coagula Procedure)입니다. 쉽게 말해 뇌의 일부를 흑인의 두개골에 이식해서 백인의 의식이 흑인의 신체를 사용하도록 만드는 수술법입니다. 원래 주인의 의식은 지워지지 않고 침참의 방(Sunken Place)이라는 정신적 공간에 영구적으로 유폐됩니다. 침참의 방이란 최면 유도 상태에서 피해자의 의식이 격리되어 자신의 몸을 밖에서 바라보기만 할 수 있는 내면의 감옥을 뜻합니다. 영화 초반부에 이런 설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보면, 흑인 가사 도우미들의 행동이 그냥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말투가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고, 웃음이 입에만 걸려 있고, 눈빛이 어딘가 초점을 잃은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그 장면들을 볼 때는 단순히 최면 때문에 좀 이상한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결말을 알고 나서 다시 그 장면들을 떠올리니 소름이 돋았습니다. 몸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데 원래 주인의 감정이 잠깐씩 새어 나오는 거였으니까요. 주인공 크리스(Chris)가 여자친구 로즈(Rose)의 집을 방문하면서 마주치는 불편함들은 일상적인 미국 흑인 남성의 경험을 정확하게 재현합니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경찰이 운전자인 로즈가 아니라 ...

노웨어 영화 리뷰 (배경, 생존기술, 모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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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상황에서 "나라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고 자문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영화 노웨어를 보는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다 한가운데 컨테이너 안에 갇힌 임산부 한 명. 그 단순한 설정이 어떻게 이토록 강렬한 생존기로 완성되는지, 직접 보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유럽 자원 위기 속 이민, 그 절박한 배경 이 영화가 단순한 서바이벌 스릴러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배경 설정부터 꽤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유럽이 기초자원 부족 대책을 시행한 지 7개월이 흐른 시점을 배경으로 합니다. 스페인 정부가 임산부와 아이들을 강제로 연행하기 시작했고, 임신한 미아는 남편과 함께 아일랜드로 밀항을 시도합니다. 디스토피아적(dystopian) 세계관, 즉 현실보다 더 억압적이고 통제된 사회를 배경으로 한 설정입니다. 처음엔 다소 과장된 설정이라고 느꼈는데, 실제로 유럽 각국에서 진행 중인 이민자 통제 정책이나 난민 처우 문제를 생각하면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 통계 에 따르면 전 세계 강제 이주민은 1억 명을 넘어섰으며, 불법 이동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매년 수천 명에 달합니다. 미아의 이야기가 먼 나라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밀항 과정은 처음부터 처참합니다. 추가 선비를 내고 간신히 컨테이너에 오른 두 사람은 검문 과정에서 군인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하고, 미아는 박스 위로 몸을 숨기는 데 성공하지만 남편은 생이별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는데, 연출이 워낙 현실적이어서 제가 그 컨테이너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강제 이주(forced migration)란 전쟁, 박해, 자연재해 등 비자발적 이유로 거주지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영화는 이 개념을 스크린으로 옮겨, 통계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저는 평소 이런 사회적 메시지가 무겁게 느껴지는...

들쥐 시리즈 리뷰(정체성, 복수, 결말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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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들쥐는 공개 직후 2일 만에 10화를 전부 몰아보게 만드는 흡입력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저도 티저 예고편 하나에 낚여서 주말을 통째로 날렸는데,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었거든요.(스포O) 정체성 도둑질, 어디서 시작됐나 들쥐를 보면서 어린 시절 들었던 전래동화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손톱을 함부로 버리면 쥐가 먹고 그 사람으로 둔갑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혹시 그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이 드라마는 그 동화적 상상력을 현대적으로 비틀어서 만든 작품입니다. 손톱, 똑같은 얼굴, 가짜가 진짜 자리를 차지하는 구조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전래동화에서는 손톱을 아무 데나 버린다는 사소한 실수가 화를 부르는 구조였다면, 들쥐의 구조는 훨씬 복잡합니다. 가짜 제문재, 즉 서유민이 진짜 제문재의 신분을 빼앗으려 한 이유는 단순한 탐욕이 아닙니다. 자신의 사랑과 재능, 인생 자체를 먼저 도둑맞은 것에 대한 복수였으니까요. 저는 이 지점에서 누가 먼저 들쥐였는가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정체성 탈취(Identity Theft)란 타인의 개인 정보를 도용해 그 사람인 척 행동하는 범죄를 말합니다. 실제로 디지털 환경에서의 정체성 탈취는 점점 정교해지고 있는데,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에 따르면 개인 정보 도용 관련 신고 건수는 매년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들쥐가 단순한 픽션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서유민이 제문재의 신분을 차지하기 위해 준비한 과정은 섬뜩할 만큼 정밀합니다. 주민번호와 지문 변경, 동창모임 침투, 신용카드를 이용한 함정, 심지어 경찰에 먼저 자신의 존재를 신고하는 역발상까지. 아이덴티티 스와핑(Identity Swapping), 즉 두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이 완전히 뒤바뀌는 상황이 이 드라마의 핵심 서사 장치입니다. 복수의 끝에서 남은 것 서유민의 복수는 감탄스러울 정도로 치밀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 복수가 정당했을까요? 저는 그 질문에 쉽게 ...

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 리뷰(우정, 아스트로파지,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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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먼저 읽고 극장에 갔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우주선과 로키의 모습이 스크린에서 전혀 다른 질감으로 펼쳐졌는데, 그게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단순한 SF 생존 영화가 아닙니다. 종족도 언어도 생김새도 완전히 다른 두 존재가 우주에서 만나 서로를 구하는 이야기입니다.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스포O) 아스트로파지, 인류를 위협한 별의 포식자 책을 읽을 때는 아스트로파지(Astrophage)라는 단어가 좀 낯설었습니다. 아스트로파지란 별을 뜻하는 '아스트로(astro)'와 제거·삭제를 뜻하는 '파지(phage)'가 결합된 이름으로, 말 그대로 별을 죽이는 미생물입니다. 태양에서 에너지를 흡수하고 금성으로 날아가 번식하는 순환을 반복하면서, 태양이 지구에 보내는 열을 조금씩 빼앗아 빙하기를 앞당기는 존재입니다. 이 설정이 섬뜩한 이유는 아스트로파지에게 악의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그냥 먹고 번식할 뿐입니다. 지구의 운명 따위는 관심 밖입니다. 영화 속 페트로바선(Petrovian Line) 장면, 즉 아스트로파지가 행성 사이를 오가며 만들어내는 긴 빛의 띠를 처음 봤을 때 진짜로 숨이 막혔습니다. 카메라의 적외선 필터를 제거하고 철망에 조명을 쏴 실제로 촬영한 장면이라고 하는데, CG였다면 절대 그 느낌이 안 났을 것 같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단 1mg의 아스트로파지가 TNT 폭탄 21톤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낸다는 계산입니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나오는 질량-에너지 등가 법칙(E=mc²)으로 설명됩니다. 질량-에너지 등가 법칙이란 물체의 질량에 광속의 제곱을 곱한 값이 그 물체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 총량과 같다는 원리입니다. 광속의 제곱은 약 9경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라 질량 1kg만 에너지로 완전 전환해도 원자폭탄 1,000개 수준이 됩니다. 아스트로파지는 반물질 없이도 이 변환을 100% 해낸다는 설정이니, 그것만으로도...

파묘 영화 리뷰(무속신앙, 파묘의식, 역사적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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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파묘를 보기 전까지 한국 공포영화에서 역사 이야기가 이렇게 무겁게 다가올 줄 몰랐습니다. 무당과 풍수사가 나오는 오컬트물이라 해서 그냥 무서운 영화 한 편 보겠다 싶었는데, 극장을 나오면서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무속신앙과 풍수지리,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잔재가 한 편 안에서 이렇게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제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스포O) 묘를 파면 안 된다는 말, 진짜일까 어릴 때부터 어른들한테 묘를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말이 그냥 미신이나 관습적 금기 정도라고 가볍게 여기는 분들이 많을 텐데, 제 경험상 공동묘지 근처를 지나갈 때면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땅에 기운이 있다는 개념을 완전히 부정하기도 어렵더라고요. 영화에서 이 감각을 가장 잘 살린 장면이 바로 파묘의식(破墓儀式), 즉 매장된 관을 발굴하는 장면입니다. 파묘의식이란 이미 땅에 묻힌 유해를 다시 꺼내는 절차를 뜻하는데, 풍수지리학에서는 묘소의 위치나 상태가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영화 속 풍수사 김상덕이 묘역 주변을 살피며 즉각 손을 떼겠다고 한 것도 바로 이 감각에서 비롯된 반응입니다. 제가 마음을 졸이며 본 장면이 바로 그 발굴 순간이었습니다. 묘를 팔 때 뭔가 험한 게 나올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아서, 화면 속 인부들이 삽을 들기 시작할 때부터 손에 땀을 쥐었습니다. 영화는 그 기대와 두려움을 정확히 건드립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핵심 개념이 묘바람입니다. 묘바람이란 조상의 묘소에 문제가 생겨 그 기운이 후손에게 흘러내려오는 현상을 뜻하며, 산소탈이라고도 부릅니다. 가문의 장손들에게만 대를 이어 불운이 찾아온다는 설정이 이 묘바람 개념을 근거로 설명됩니다.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은 땅의 기운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동양 전통 사상을 체계화한 학문으로, 영화는 이를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하나의 논리적 체계로 다룹니다. 파묘의식 과...

올빼미 영화 리뷰(역사적 배경, 주맹증 설정, 인조와 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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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도 이 영화 앞에서는 두 손을 들었습니다. 뻔한 왕위 다툼, 정치 싸움이 또 나오겠지 싶어 후순위로 밀어뒀던 영화인데, 직접 겪어보니 지금껏 본 사극 중에 가장 손에 땀을 쥐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이야기. 그것도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스포O) 사극을 싫어하던 제가 올빼미를 선택한 이유, 역사적 배경 저는 솔직히 사극 영화를 고를 때 제목부터 제외하는 편입니다. 조선 시대 배경의 영화는 어차피 세력 싸움, 누가 왕이 되느냐, 그 구도가 반복되니까요. 그런데 올빼미를 보고 나서 그 선입견이 꽤 많이 무너졌습니다. 이 영화의 출발점이 된 역사적 사건인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죽음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단 몇 줄만 남아 있는 미스터리입니다. 실록에는 7개의 구멍에서 피가 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독살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공식적으로 규명된 바는 없습니다. 인조(仁祖)와 소현세자의 관계를 조금만 알고 들어가면 이 영화가 훨씬 다르게 보입니다.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三田渡의 屈辱)을 겪은 왕입니다. 삼전도의 굴욕이란 1637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청나라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한 사건으로, 조선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 결과 볼모로 청나라 심양에 끌려간 사람이 바로 그의 아들 소현세자입니다. 그런데 심양에서 8년을 보낸 소현세자는 뜻밖의 방식으로 두각을 드러냅니다. 청나라 관리들과 능숙하게 교류하고, 조선에서 끌려간 포로 수만 명을 몸값을 치러 귀환시키는 외교적 성과를 냅니다. 당시 조선 백성들 사이에서 소현세자의 명망은 대단했습니다. 반면 인조는 반정(反正)으로 즉위한 지 1년 만에 이괄의 난이라는 반란이 일어났고, 한양도성이 함락되자 충청도로 도주했는데 그를 따라 나선 백성이 거의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두 사람의 위상 차이가 올빼미라는 영화 전체의 긴장감을 만드는 뿌리입니다. 소현세자와 관련된 역사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국역 데이터베이스 에서 직접...

만약에 우리 영화 리뷰(공간 상징, 배우 연기, 첫사랑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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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엔 별 기대를 안 했습니다. 원작인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를 2년 전에 봤었는데, 잔잔한 분위기에 절반쯤 졸면서 봤던 기억이 있어서요. 그런데 <만약에 우리>를 보고 나오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한국 정서로 재해석된 이 이야기가 원작보다 훨씬 더 가슴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스포O) 공간 상징: 옥탑에서 반지하로, 사랑이 내려앉는 방식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공간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은호와 정원의 사랑은 그들이 사는 공간의 높낮이와 정확히 반비례합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를 통해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는 영화적 기법인데, 이 영화는 그 미장센을 공간이라는 단 하나의 축으로 밀어붙입니다. 처음 두 사람이 사랑을 시작하는 곳은 옥탑방입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옥탑방은 가난하지만 낭만이 살아 있는 공간으로 자주 등장하죠. 이 영화도 그 공식을 따르되, 빛을 아주 영리하게 씁니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자연광, 하늘과 가장 가까운 그 좁은 방에서 은호는 게임을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하겠다고 했고 정원은 건축가가 되어 꿈꾸는 집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때의 가난은 불편함이지 장애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둘이 반지하로 이사하는 순간부터 영화의 채도가 달라집니다. 영화 <기생충>이 전 세계에 각인시킨 그 반지하의 이미지. 대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하고, 벽지는 습기로 울고, 눈높이에 보이는 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뿐입니다. 옥탑방에서는 라면 한 그릇을 나눠 먹어도 웃음이 났지만, 반지하에서는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책상에 엎어져 잠드는 은호와, 발뒤꿈치가 까진 채 유니폼도 못 벗고 쓰러지는 정원의 모습이 이어집니다. 사랑이 식어서 헤어지는 게 아닙니다. 삶이 버티는 것으로 바뀌면서 사랑을 지탱할 물리적 기반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 거죠. 여기에 붉은 소파라는 오브제가 더해집니다. 길가에 버려진 낡은 소파를 주워 방에 구겨 넣던 날, 그들은...

인터스텔라 영화 리뷰 (제작비화, 과학이론, 흥행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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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서 "다 이해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요? 저는 솔직히 처음 봤을 때 테서랙트 장면에서 멍하니 스크린만 바라봤습니다. 2014년 개봉 이후 국내에서만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인구 대비 흥행 성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독보적이었던 이 영화. 한 번 보고 끝내기엔 아까운 영화가 맞습니다.(스포O) 물리학자가 직접 참여한 제작비화 일반적으로 SF 영화는 과학을 그럴듯하게 포장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인터스텔라는 제작 방식 자체가 달랐습니다. 영화의 씨앗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화 제작자 린다 옵스트와 이론물리학자 킵 손(Kip Thorne)이 소개팅으로 처음 만났는데, 연인이 아닌 친구로 남은 두 사람이 2005년에 "진짜 과학을 담은 블록버스터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연인이 되지 않은 게 우리에게는 참 다행인 셈이죠. 킵 손은 단순한 자문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1988년 발표한 논문 '시공간에서 웜홀을 활용한 항성 간 여행'으로 인터스텔라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고, 2017년에는 중력파(Gravitational Wave) 관측 기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과학자입니다. 중력파란 쉽게 말해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 운동을 할 때 시공간에 생기는 물결 같은 파동을 뜻합니다. 영화 속 과학이 실제 노벨상 수준의 연구자에게 검증을 받은 셈이니, 다른 SF 영화들과 출발점부터 다르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았고, 동생 존 어서 놀란이 각본을 썼습니다. 하지만 드림웍스가 파라마운트에서 디즈니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가 흔들렸고, 결국 형 크리스토퍼 놀란이 바통을 넘겨받았습니다. 형 놀란은 킵 손이 재직했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서 4년간 상대성 이론을 직접 공부하며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스필버그 버전의 인터스텔라가 나왔다면 어떤 영화가 됐을지, 가끔 그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

인셉션 영화 리뷰(꿈과 현실, 영화 설계, 팽이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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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절반도 이해 못 했습니다. 화면은 화려하고 이야기는 빠르게 달려가는데, 지금이 꿈인지 현실인지 따라가기도 벅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혼란이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은 네 번을 봤습니다. 인생 영화를 꼽으라고 하면 저는 망설임 없이 인셉션을 고릅니다.(스포O) 꿈이라는 소재, 그리고 첫 충격 제가 처음 인셉션을 극장에서 봤을 때 아리아드네가 파리 거리를 접는 장면에서 말 그대로 숨이 멎었습니다. 그 장면 하나로 "이 감독,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 이야기를 구상하는 데만 10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는데, 보고 나니 그 말이 납득이 됐습니다. 타인의 꿈에 침투해 생각을 훔친다는 설정 자체가 워낙 참신해서 처음에는 그 아이디어에만 정신이 팔렸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 영화의 진짜 출발점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경험해본 것들입니다. 꿈속에서 "어? 이거 꿈인가?" 하고 인식하는 순간, 꿈속에서 또 꿈을 꾸는 경험, 저도 어릴 때 꿈을 연속극처럼 이어서 꾼 적이 있었는데 그 감각이 이 영화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습니다. 놀란 감독도 이런 개인적인 경험들로부터 이야기를 뽑아낸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자각몽(Lucid Dream)이란 꿈을 꾸는 도중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영화 속 코브와 아리아드네의 관계가 바로 이 자각몽의 원리를 응용한 것입니다. 추출(Extraction)이란 타인의 무의식에서 정보를 빼내는 행위를 가리키는 이 영화만의 용어인데, 도둑질이라고 하면 너무 직설적이니 추출이라는 단어를 쓴 것이 굉장히 절묘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림보(Limbo)는 원래 가톨릭 신학에서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 상태를 뜻하는 개념인데, 이 영화에서는 꿈의 가장 깊은 심연, 즉 시간이 무한히 늘어지는 무의식의 공간으로 재해석됩니다...

왕과 사는 남자 영화 리뷰(단종, 엄홍도, 흥행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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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너무 슬프다는 말과 볼 만하다는 말이 동시에 들려왔습니다. 솔직히 그 두 평이 공존한다는 게 오히려 더 궁금했습니다. 눈물 뺀다고 소문난 영화치고 실제로 울어본 게 많지 않아서, 이번엔 직접 확인해 보자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상과 딱 반은 맞고 반은 달랐습니다.(스포O) 단종이라는 소재, 알고 보니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단종(端宗)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습니다. 명이 짧은 왕 중 하나, 그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었는지는 솔직히 잘 몰랐습니다. 계유정난(癸酉靖難), 즉 1453년 수양대군이 권력을 빼앗기 위해 일으킨 정변으로 단종이 왕위를 잃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도, 그 이후 단종이 어디서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했는지는 막연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청령포(淸泠浦)라는 지명을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청령포란 강원도 영월에 있는 지역으로, 단종이 귀양살이를 했던 장소입니다. 삼면이 강으로 막혀 있어 사실상 섬처럼 고립된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을을 관리하는 현령, 영화에서는 엄홍도라는 인물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귀양 오는 양반을 마을로 유치해서 마을을 살려보려 했던 시골 관리가 역사에 실재했다는 게 제겐 꽤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세조가 단종에게 예를 갖춰 장례를 치러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란 조선 시대 역대 왕들의 통치 기록을 담은 공식 역사서로,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습니다( 출처: 국가유산청 ). 하지만 현대 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기록 자체가 승리한 자의 서술이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세조가 사약을 내렸는데 단종이 이미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는 타이밍이, 생각하면 할수록 석연치 않습니다. 어린 왕을 직접 죽인 게 되면 명분에 문제가 생기니까, 실록에 그렇게 적어두는 게 당시 입장에서는 가장 깔끔한 처리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다루는 건 바로 그 빈틈입니다....

살목지 영화 리뷰(로드뷰, 공포연출, 서사완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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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마다 공포영화 한 편 찾아보는 편인데, 솔직히 고민이 됩니다. 공포영화 평점이 워낙 박해서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살목지는 개봉 직후 "진짜 무섭다"는 말이 꽤 많이 돌았고, 쿠팡플레이에 올라온 걸 확인하고 바로 봤습니다. 기대와 아쉬움이 반반씩 남은 영화였습니다.(스포O) 로드뷰 속 귀신, 배경 설정이 절반을 먹고 들어갔습니다 저도 처음엔 이 설정이 이렇게 효과적일 줄 몰랐습니다. 로드뷰(Road View)란 구글 맵이나 네이버지도에서 실제 거리를 360도 사진으로 찍어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누구나 매일 쓰는 그 화면 안에 정체불명의 형체가 박혀 있다는 설정 하나만으로 영화는 시작 전부터 관객을 긴장시킵니다. 저도 영화 보고 나서 한동안 로드뷰 켜기가 꺼려졌으니까요. 살목지(殺木池)는 충남 예산에 실제로 있는 저수지 이름입니다. 1982년 농업 용수용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화살나무가 많아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수지라는 공간 자체가 이미 으스스합니다. 안개가 끼는 새벽에 산속 저수지 근처를 지나본 적이 있는데, 물과 땅의 경계가 흐릿하고 어디서 발을 헛디딜지 모른다는 느낌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물귀신이 나올 것 같다는 상상, 저만 한 게 아닐 겁니다. 이 배경은 MBC 심야괴담회에서도 실제 사연으로 소개된 적 있는 장소입니다. 내비게이션이 잘못 안내해 저수지 낭떨어지 직전에 차가 멈췄다는 경험담이 퍼지면서 이미 공포의 장소로 소문이 나 있었죠. 감독은 이 사연을 로드뷰의 오작동으로 살짝 변형해 디지털 불안과 실화 공포를 하나로 엮었습니다. 시류를 읽는 감각이 꽤 날카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공포 연출, 소리는 좋았고 점프 스케어는 아쉬웠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청각적 연출이었습니다. 점프 스케어(Jump Scare)란 갑작스러운 시각·청각 자극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공포 기법입니다. 살목지는 이 기법을 자주 씁니다. 문제는 패턴이 일정하다는 겁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

군체 영화 리뷰(진화형 좀비, 집단주의,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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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영화라면 이제 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꽤 많으실 겁니다. 저도 솔직히 그랬습니다. 물리면 감염되고, 도망가다 누군가 희생되고, 가까스로 탈출하는 구조. 그 공식이 너무 익숙해져서 최근엔 좀비물을 고를 때 기대치를 일부러 낮추는 버릇이 생겼거든요. 그런데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는 그 버릇을 한 번 흔들어놓았습니다. 진화형 좀비라는 설정, 실제로 얼마나 신선한가 군체에서 등장하는 감염체(infected organism)는 기존 좀비물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감염체란 바이러스나 특정 매개체에 의해 본래의 자아를 잃고 변이한 존재를 뜻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감염체들이 서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집단적으로 진화합니다. 쉽게 말해, 한 개체가 주인공의 약점을 발견하면 그 정보가 즉시 전체 군집으로 퍼지는 방식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딥러닝(deep learning)이었습니다. 딥러닝이란 대량의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패턴을 찾아내는 인공지능 기술인데, 감염체들이 인간의 행동 방식을 관찰하고 모방하며 점점 더 효율적으로 진화하는 모습이 딱 그것이었습니다. 연상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AI 가속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는데, 보고 나니 그 말이 그냥 마케팅 멘트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군체라는 단어 자체도 의미심장합니다. 군체(群體, colony)란 생물학 용어로, 개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하나의 단위처럼 행동하는 집합체를 뜻합니다. 산호나 해파리 같은 생물에서 쓰이는 개념인데, 이걸 좀비에 적용했다는 발상 자체가 저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로봇이나 AI가 인간을 위협하는 SF의 공식을 비틀어, 인간이 아닌 새로운 종의 탄생이라는 형태로 풀어낸 거니까요. 감염체들이 군무처럼 움직이는 장면에서는 솔직히 처음엔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딱딱 맞아서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장면들을 연기한 게 무용수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기괴함이 연출된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

메멘토 영화 리뷰 (영화 구조, 기억 조작,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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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메멘토를 두 번 봤는데도 영화가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특유의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rative) 구조, 즉 시간의 흐름을 뒤섞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보는 내내 혼란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그 혼란이 어쩌면 감독의 의도였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스포O) 영화 구조, 헷갈리는 게 당연했습니다 메멘토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이렇게 편집이 이상하지?"였습니다. 컬러 화면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흑백 화면은 정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두 시퀀스가 번갈아 나오다가 영화 엔딩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인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이게 의도된 장치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시퀀스(Sequence)란 영화에서 하나의 주제나 사건으로 묶이는 연속된 장면들의 단위를 말합니다. 놀란 감독은 컬러 시퀀스와 흑백 시퀀스를 각각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내다가, 스토리상 중간 지점에서 두 흐름이 만나도록 설계했습니다. 오프닝 씬이 사실상 스토리의 끝이고, 엔딩 씬이 스토리의 중간이라는 거죠. 저는 두 번째로 볼 때도 이 구조를 완벽하게 따라가지 못했고, 가능하다면 흑백과 컬러 장면을 시간순으로 재편집한 버전으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관점이 있습니다. 시간 순서대로 장면을 나열하면 이해가 쉬워지지 않냐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게 오히려 영화의 핵심을 놓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놀란 감독이 굳이 이 구조를 택한 건 단순히 관객을 헷갈리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주인공 레너드의 상태를 관객이 몸으로 겪게 하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10분마다 기억이 리셋되는 사람이 겪는 단절과 혼란을 영화 구조 자체로 재현한 거죠. 특히 영화 오프닝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이 리와인드되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감독은 첫 장면에서 레너드가 테디를 죽이는 장면을 역재생으로 보여주며, 이 ...

와일드씽 영화 리뷰 (레트로 감성, 배우 앙상블,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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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제목도 내용도 전혀 몰랐습니다.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니가좋아'라는 노래가 자꾸 흘러나오길래 검색해봤더니 영화 와일드씽이 나오더군요. 날씨도 덥고 시원한 극장에서 뭔가 가볍게 볼 수 있겠다 싶어서 코미디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건 드문 일인데도 티켓을 끊었습니다. 그 선택이 꽤 괜찮았습니다.(스포O) 레트로 감성 막상 극장에 들어가서 깨달은 첫 번째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SNS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니가좋아'는 이 영화의 메인 음악이 아니었습니다. 실제 영화 속 트라이앵글이라는 그룹의 대표곡은 'LOVE IS'였거든요. 처음에는 살짝 당황했는데, 그 당황함이 금세 사라졌습니다. 'LOVE IS'를 듣는 순간 이게 요즘 노래가 아닌데도 이상하게 중독성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구현해낸 레트로 감성(Retro Aesthetic)이란, 단순히 옛날 의상이나 소품을 갖다 놓는 수준이 아닙니다. 레트로 감성이란 특정 시대의 분위기, 색감, 사운드, 문화 코드를 재현해 당시를 살았던 사람에게는 향수를, 그 시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낯선 신선함을 동시에 주는 방식을 뜻합니다. 와일드씽은 이 부분을 꽤 정교하게 건드립니다. 트라이앵글이라는 그룹이 실제 2000년대 초반에 존재했을 법한 디테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안무 스타일, 무대 매너, 의상의 색감까지 그 시대를 아는 사람이 아니면 만들어내기 어려운 요소들이 촘촘하게 깔려 있습니다. 저처럼 그 시대를 어렴풋이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저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감각이 계속 드는 영화였습니다. MZ 세대도 충분히 좋아할 만한 포인트가 있다고 보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낯설지 않은 중독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스탤지어 마케팅(Nostalgia Market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문화나 감성을 현재 콘텐츠에 활용해 소비자의 감정적 유대를 끌어내는 전략을 말합니다. 와일드씽은 이...

곡성 영화 리뷰 (외지인 정체, 허주, 무명,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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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에서 외지인은 단순한 귀신이 아니라 여러 혼령이 뒤섞인 복합적 존재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무서운 일본인 노인 정도로만 봤는데, 다시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 영화가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는지 느꼈습니다.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단 하나도 없는 세계, 그게 곡성이 관객에게 던지는 가장 불편한 질문입니다. (스포O) 외지인의 정체,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다 처음 시나리오에서 외지인의 이름은 나카무라 히데요시였고, 한국으로 도주한 살인자라는 설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직접 봤을 때 느낀 건, 그 설명만으로는 영화 속 그의 행동을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짐승처럼 기어 다니다가 갑자기 사람 말을 하고, 목격자마다 보는 모습이 극단적으로 다릅니다. 같은 존재를 보고 어떤 사람은 노인을 봤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짐승을 봤다 합니다. 여기서 성육신(成肉身)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성육신이란 영적 존재가 인간의 육신을 입고 현실 세계에 나타나는 것을 뜻하는 기독교 신학 용어입니다. 나홍진 감독은 외지인을 '살과 뼈가 있는 귀신'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는데, 이 개념을 거꾸로 비튼 것으로 읽힙니다. 귀신이지만 육신이 있으니 아파하고 두려워하고 도망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났을 때 그가 겁에 질려 도망가는 장면이 가능한 겁니다. 외지인의 몸 안에는 나카무라, 짐승, 노부 등 여러 혼령이 뒤섞여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 있습니다. 피해자들에게서 발현되는 귀신의 모습이 마치 낚싯대를 든 외지인과 닮아 있다는 점, 피해자들이 자상으로 사망한다는 공통점 모두 이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제가 두 번째 관람에서 그 장면들을 다시 확인했을 때, 처음엔 그냥 지나쳤던 디테일들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외지인의 주술 공식은 꽤 구체적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단계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미끼를 던진다 — 낚싯대를 드리우듯 피해자에게 접근합니다. 피해자와 물리적 접촉 후 소지품을 가져옵니...

스파이더맨 : 브랜드 뉴 데이 영화 리뷰 (정체성, 성장, 진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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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영화에 슬슬 지쳐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로 나오는 작품들이 기대만큼 재미있지 않다는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들었고, 저도 반쯤 의심하면서 극장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그 의심을 꽤 깔끔하게 깨버렸습니다. 일반적으로 프랜차이즈 후속편은 전편보다 못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번 편은 오히려 시리즈 중에서도 손꼽을 만한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스포O) 영화 정체성 : 의심하고 들어갔다가 설득당한 이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블 영화가 인피니티 워 이후로 전성기를 지났다는 이야기는 영화 팬들 사이에서 꽤 오래된 공통 인식입니다. 실제로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개봉한 작품 중 진심으로 극장에서 몰입했던 기억이 손에 꼽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스파이더맨도 반쯤 의무감으로 보러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오프닝 몽타주 시퀀스(sequence)란 영화 초반에 여러 장면을 빠르게 이어 붙여 보여주는 편집 방식을 뜻합니다. 이 장면에서 스파이더맨이 각종 악당들을 상대하는 포즈들이 코믹북 표지를 그대로 재현한 구도로 펼쳐졌는데, 팬이 아니어도 에너지가 느껴질 만큼 잘 만들어졌습니다. 단순한 팬서비스를 넘어서 완성도 자체가 높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슈퍼히어로 영화의 클라이맥스(climax)란 이야기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장면을 말하며, 보통 대규모 전투 장면으로 채워집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좁은 방 안에서 두세 사람이 나누는 대화 장면이었습니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정적인 대화로 채우는 건 꽤 위험한 선택인데, 영화는 그걸 설득력 있게 해냈습니다. 드라마가 성공했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닌자 클랜 핸드(Hand)와의 전투 장면이었습니다. 좌우는 좁고 위로는 뻥 뚫린 직사각형 구조의 실내 공간에서, 붉은 복장을 한 닌자들이 솟구치고 쌍검을 휘두르는 장면이 슬로모션으로 펼쳐집니다. 배경은 ...